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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문화재

대상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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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시설

봉천사 묘정비

종류 | 유형문화재

종목 | 남해군 보호문화재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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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로 두 번 유배 온 소재 이이명을 기리는 비

 

소재 이이명은 기사환국으로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장인인 서포 김만중이 남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자 숙종 18년(1692)에 남해로 이배되었다. 1721년(경종 원년)에 경종이 병약하여 황세자인 영조의 대리청정을 추진하다가 소론의 반대로 실패하게 되자 남해로 안치되었다. 유배된 이이명은 29년 전에 유배 왔던 집을 수리하여 향사들에게 효제충신(孝悌忠信)의 학문을 가르쳤다.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이이명이 역모를 꾸며 남해에서 왕으로 추대 되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모함으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던 중 1722년 한강진에서 사사되었다. 이 사실을 안 남해향사들은 어버이를 잃은 듯 슬퍼하였다. 1800년(정조24)에 남해의 향사들이 진주 사람들과 힘을 모아 이이명이 남해에서 머물던 습감재(習坎齋)의 옛터에서 2~3리 떨어진 곳에 사당을 지었고, 한양 노량진 사충당에 봉안하였던 영정을 가져와 모시고 봉천사라 하였다. 봉천사 묘정비는 김조순이 비문을 지었고, 글은 김난순이 썼다. 묘정비는 사당이 만들어진 후 28년이 지난 1828년(순조28)에 세워진 것이다. 이이명이 죽고 100여 년이 지난 후에 세워진 이 비는 봉천사 묘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당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고, 남해읍 북변리 430번지 야산에 있던 것을 남해유배 문학관으로 옮겼다. 총 높이 286cm, 비신 높이 220cm, 너비 83.4cm, 두께32.5cm 이다.

소재지
남해읍 남해대로 2745 남해유배문학관 내
운영시간
-
출처

남해군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이미지 출처

남해문화원